바쁘다는 것은 당신안의 선함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이다
황현호 원장
국제코치훈련원 원장
한국부부행복코칭센터 원장
아주대학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광운대학교교육대학원 겸임교수
숭실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전, ICF코리아챕터 회장
당신이 길을 가다가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도와야죠"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중요한 약속에 늦었다면요? 여전히 그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요?
1973년,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진행된 한 실험은 이 질문에 충격적인 답을 제시했습니다. 심리학자 존 달리(John Darley)와 대니얼 베이트슨(Daniel Batson)은 67명의 신학생을 대상으로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은 교묘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다른 건물로 가서 연설을 하라고 지시했죠. 일부 학생들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대해 연설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동하는 길목에 쓰러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기침과 신음을 하는 연기자였죠. 과연 신학생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전체적으로 40%의 학생만이 도움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시간적 여유가 미친 영향이었습니다. "늦었어요, 빨리 가야 해요"라는 말을 들은 학생들 중 단 10%만이 쓰러진 사람을 도왔습니다. 반면, "몇 분 더 기다려야 하지만, 지금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며 시간적 여유를 가진 학생들의 63%가 도움을 제공했습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해 연설 준비를 하던 학생이나 다른 주제를 준비하던 학생이나 도움 제공률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종교성의 유형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착한 성격이나 종교적 신념보다 '바쁨'이라는 상황적 요인이 도덕적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였던 것입니다.
몇몇 급한 학생들은 심지어 쓰러진 사람을 넘어서서 연설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해 말하기 위해, 정작 눈앞의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할 순간을 놓친 것입니다.
이 실험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믿죠.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바쁨은 우리의 도덕성을 마비시킵니다. 시간에 쫓길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믿는 가치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는 바쁨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요즘 어때?" 라는 질문에 "바빠 죽겠어"라고 답하는 것이 성실함의 증거처럼 받아들여집니다. 빈틈없이 채워진 스케줄은 생산적인 삶의 상징이 되었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바쁨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빼앗고 있을까요? 쓰러진 사람을 돕는 것은 극단적인 예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동료의 고민을 듣지 못하고, 자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친구의 전화를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마음 상태조차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프린스턴 실험이 보여주는 교훈은 단순합니다. 시간적 여유, 즉 스페이스(space)가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스케줄 사이의 빈 공간, 약속과 약속 사이의 숨 쉴 틈,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간성이 작동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바쁜 것은 악입니다. 바쁨은 우리를 선한 의도를 가진 나쁜 사람으로 만듭니다. 마음은 착하지만 행동은 냉담한 사람으로 만들죠. 무엇보다 바쁨은 우리에게서 선택의 자유를 빼앗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가치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오직 시계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바쁘지 않기란 쉽지 않습니다. 경쟁은 치열하고, 요구는 많고, 할 일은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의식적으로 여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스케줄 사이사이에 의도적으로 빈 공간을 두어야 합니다.
약속과 약속 사이에 15분의 버퍼를 두는 것, 하루에 한 번 아무 계획 없이 산책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 일주일에 하루는 스케줄을 완전히 비워두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듭니다. 여유는 사치가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공간입니다.
프린스턴의 신학생들은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해 연설하러 가다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기회를 놓쳤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공하기 위해 달려가다가 정작 성공의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행복해지기 위해 바쁘게 살다가 정작 행복할 시간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당신의 스케줄표를 펼쳐보십시오. 빈 공간이 보이십니까? 만약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면, 지금 당장 지우개를 꺼내십시오. 그리고 여유를 만드십시오. 그 여백이 바로 당신이 당신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바쁜 것은 악입니다. 여유는 선입니다. 이제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성찰 질문
1. 지난 한 달간 "바빠서"라는 이유로 외면했던 사람이나 일은 무엇입니까?
2. 당신의 이번 주 스케줄에서 의도적으로 비워둘 수 있는 시간은 언제입니까?
참고문헌
Darley, J. M., & Batson, C. D. (1973). "From Jerusalem to Jericho": A study of situational and dispositional variables in helping behavio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27(1), 100-108.
전문 보기: https://greatergood.berkeley.edu/images/uploads/Darley-JersualemJericho.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