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타고난 운명인가 선택 가능한 기술인가
황현호 원장
국제코치훈련원 원장
한국부부행복코칭센터 원장
아주대학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광운대학교교육대학원 겸임교수
숭실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전, ICF코리아챕터 회장
코칭 현장에서 만나는 감정의 두 얼굴
코칭 세션에서 고객들이 가장 자주 토로하는 고민 중 하나는 바로 감정 조절이다. "화가 나면 어쩔 수 없어요", "불안해서 밤잠을 이룰 수 없어요", "슬픔이 밀려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라는 말들을 듣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자신에게 일어나는 불가항력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감정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자동적인 반응일까? 아니면 우리가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경험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코칭의 근본적인 방향성을 결정한다.
전통적 관점: 감정은 타고난 프로그램이다
폴 애크먼의 기본감정 이론에 따르면, 감정은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생물학적 프로그램이다. 이 관점에서 분노, 슬픔, 기쁨, 두려움과 같은 기본감정들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며, 특정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촉발된다. 마치 컴퓨터에 미리 설치된 소프트웨어처럼, 우리 뇌에는 각 감정에 대한 고유한 회로가 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코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만약 감정이 타고난 프로그램이라면, 코치의 역할은 고객이 이미 정해진 감정 반응을 억제하거나 재평가하도록 돕는 것에 집중될 것이다.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그 표현 방식을 조절해보자"는 식의 접근이 주를 이룰 것이다.
혁신적 관점: 감정은 구성되는 기술이다
그러나 리사 펠드먼 배럿의 구성된 감정 이론은 완전히 다른 그림을 제시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감정은 뇌 속에 미리 탑재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매 순간 뇌가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심리적 사건이다. 우리의 신체 감각, 과거 경험, 그리고 문화적으로 습득한 개념들이 조합되어 특정한 감정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는 코칭에서 혁명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감정이 구성되는 것이라면, 고객은 더 이상 감정의 수동적 피해자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적 삶을 능동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설계자가 된다.
코칭 장면에서의 적용
구성된 감정 이론은 코칭 실무에 세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정서적 입자도의 확장이다. 고객이 "기분이 나쁘다"라고 표현할 때, 코치는 이를 더 구체적이고 정교한 감정 개념으로 세분화하도록 도울 수 있다. "짜증이 나는 건가요, 실망스러운 건가요, 불안한 건가요?"라는 질문을 통해 고객의 뇌가 더 정확한 감정을 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풍부한 감정 어휘는 더 적응적이고 효과적인 대처 방안으로 이어진다.
둘째, 신체 알아차림 능력의 향상이다. 많은 고객들이 자신의 신체 감각에 둔감하다. 심장이 빨리 뛰거나 근육이 긴장되는 등의 미묘한 신호들을 놓치면, 감정이 이미 완전히 형성된 후에야 이를 인식하게 된다. 코치는 고객이 자신의 내부 신체 상태를 더 세밀하게 관찰하도록 돕고, 이러한 조기 신호들을 인식할 때 감정 구성 과정에 개입할 수 있음을 알려줄 수 있다.
셋째, 예측 패턴의 재구성이다. 뇌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며, 이 예측이 감정 구성의 핵심이다. 코칭을 통해 고객이 새로운 경험을 쌓고 기존의 예측 패턴을 업데이트할 수 있다면, 동일한 상황에서도 다른 감정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접근이다.
실천적 제안
구성된 감정 이론을 바탕으로 한 코칭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유용하다.
"지금 몸에서 어떤 감각을 느끼시나요?"
"이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단어가 있을까요?"
"과거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예상을 했었나요?"
또한 고객의 수면, 영양, 운동 상태를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건강 관리를 넘어, 감정 구성의 기초가 되는 '신체 예산' 관리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마무리
감정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코칭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고객이 감정의 피해자가 아닌 창조자임을 깨달을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감정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코칭이 고객에게 전해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일 것이다.
성찰 질문
최근 경험한 강한 감정을 떠올려보세요. 그 순간 당신의 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요?
같은 상황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참고문헌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2017). 리사 펠드먼 배럿 저, 최호영 역. 생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