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부’ 그리고 코칭_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
윤지선 대표 (KPC)
현) 윤코칭웨이 대표
현) 국제코치훈련원 트레이너
현) KAC자격인증기관 심사위원
바둑은 오목밖에 모르는 내가, 바둑 영화 <승부>를 보며 코칭과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정답이 아니라 ‘최선의 수’를 찾는다는 점, 관계 속에서 유일한 길을 만들어가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인상 깊었던 몇몇 대사를 중심으로 코치로서의 나의 길을 돌아보게 되었다.
“창호, 넌 바둑이 재밌니?”
조훈현이 묻자, 꼬마 이창호가 답한다. “징허죠. 지면 잠도 안 오고 밥맛도 없고 고로코롬 분할 수가 없어라. 근디 이기믄 그게 또 고라고 재밌을 수가 없당께요. 고 맛에 바둑 두는 거 아니겠어라?” 나에게도 코칭은 징하다. 세션 하나에 뭔가 아니었다 느낌이 들면 며칠씩 자책하고,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어 괴로워한다. 하지만 고객이 회복되고 에너지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 그 맛에, 코칭을 한다 싶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예의야.”
조훈현이 제자에게 강조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였다. 코칭도 마찬가지다. 코치는 종종 고객의 목표 달성이나 행동 변화, 세션 만족도와 같은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기 쉽다. 물론 지표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고객의 존재를 온전히 신뢰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고객이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코치는 그 여정을 함께하는 파트너라는 걸 잊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코칭의 본질이다.
“모든 건 다 체력이다.”
바둑에서 체력이 떨어지면 경솔한 수를 두게 된다고 한다. 조급해지고, 오만해지고, 중요한 순간에 집중력을 잃는다. 코칭도 마찬가지다. 코치는 스킬과 기법에는 관심이 많지만, 그걸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체력 관리에는 소홀하기 쉽다. 나 역시 이른 아침이나 밤이나 진행되는 코칭 세션, 줌 모임, 주말 없는 교육과 워크숍, 끝없는 자기 계발에 어느 순간부터 지치고, 고관절이 아파 장시간 앉아있기 힘들어졌다. 고객 감정선의 미묘한 결을 놓치고, 존재가 아닌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체력은 단지 신체적 건강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정신적 여유, 감정적 안정, 영적 깊이까지 포함된 총체적 에너지다. 이것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코칭 스킬도 무용지물이다. 지금은 운동 시간과 멈춤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며, 더 오래 건강하게 코칭하기 위해 일상을 조율하고 있다.
“나만의 바둑을 찾을 거예요.”
이창호는 스승의 화려한 스타일을 배우는 대신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만의 바둑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투박하더라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스타일을 갖겠다고. 나 역시 코칭 교육과정을 마치면 어느 정도는 완성될 줄 알았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은 날고뛰는 듯한데 나는 그러지 못해 조급했고, 혼란스러웠다. 지금 돌아보면 미숙했던 거다. 애초에 출발선도, 역량도, 무대도 다르다는 사실을 몰랐으니까. 덕분에 나 자신의 상태를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었고,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처절하게 고민하고, 수없이 좌절하지만, 이런 과정을 지나야 진짜 프로 코치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렇게 견디다가 이기는 거요.”
“쓰라린 상처에 진물이 나고 딱지가 내려앉고 새살이 나고. 그렇게 참다 보면 한 번쯤은 기회가 오거든.” 코칭은 성과를 재촉할 수 없는 일이다. 고객의 변화는 코치가 바라는 시점에 일어나지 않는다. 때로는 세션 이후 한참이 지나서 세션의 진짜 의미를 깨닫기도 한다. 초보 코치 시절에 코칭을 받은 내 고객들은 지금 내가 하는 코칭을 받으면 그때와 달라졌다고 느낄까? 종종 궁금해진다. 그리고 수없이 자책했던 세션의 기억. 견딘다는 것은 자신의 실력 없음과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한 자책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배우고 익히며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 바둑기사도 매일 이기고 지는 숙명을 산다는데 성장 과정 중에 있는 나의 처절한 고민과 시행착오는 당연한 과정이다.
“어설프게 뛰느니 또박또박 걷는 게 낫지.”
“네가 내린 결정이 그거라면 책임감을 가져야 해.” 생성형 AI의 급속한 확산은 코칭 현장도 빠르게 바꿔놓고 있다. 새로운 기법, 플랫폼, 도구들이 쏟아지고 SNS에는 화려한 성과들이 올라온다. 마치 따라잡지 못하면 도태될 것 같은 조급함이 몰려올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 스승 조훈현의 무심(無心)과 제자 이창호의 성의(誠意)가 오래 남는다. 마음을 비우고(無心), 마음을 다해(誠心) 나만의 코칭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고 싶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승부다.
“배우려 하지 말고 이길 궁리를 해봐.”
이 말은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코치는 종종 배우는 것에 중독된다. 새로운 코칭 기법, 심리학 이론, 코칭 모델, 유명 코치의 노하우 등을 끝없이 배운다. 나 역시 그랬다. 배워야 할 것 같고, 배워야 안심이 됐으며,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지식이 실제로 고객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이다. 어떤 고객을 돕고 싶은지, 그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을 만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그런 실천적인 고민이야말로 코치의 본질적인 질문 아닐까.
바둑과 코칭. 둘 다 정답이 없는 예술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실패를 통해 배우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결국엔, 자신과의 싸움이다. 나도 다짐한다. 드러나지 않아도, 인정받지 않아도, 진정성 있는 나만의 코칭웨이를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그것이 내가 고객에게, 그리고 코칭계에 기여하는 방식이라 믿는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고객을 만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배우고, 코칭하고, 강의하고, 글을 쓴다.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길을 걷는다.
“고 맛에 바둑 두는 거 아니겠어라?”그렇다. 그 맛에, 코칭을 한다.
<성찰질문>
1. 남을 따라가거나 조급하게 쫓아가는 코칭이 아니라, 나만의 코칭은 어떤 모습일까요?
2. 지속 가능한 코칭을 위해 돌보고 있는 나만의 ‘체력’(신체·정서·정신·영성) 중, 요즘 내가 가장 소홀했던 영역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