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수치심을 응원합니다._양은선 코치 [1]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25-03-30 22:33:47    조회: 194회    댓글: 1

당신의 수치심을 응원합니다.

 

양은선 코치 (ISC, PCC, KPC)

) 작은숲세움상담코칭 대표

) 국제코치훈련원

전문트레이너

) ICF 국제인증시험 평가교수

) PTSA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코칭학과 객원교수

 

 

 

 

라이프코치로 코칭을 하면서 다양한 고객들의 다양한 이슈를 만납니다. 특별히 저는 부부와 가정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고객을 만나고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공동체, 그리고 부부라는 관계는 너무도 특별해서 가장 가깝고 가장 친밀하면서도 가장 비밀이 많고, 가장 취약한 곳이 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가정과 부부관계에서 경험하는 상처나 어려움은 종종 드러나는 혹은 드러나지 않는 트라우마로 오랫동안 존재하게 됩니다. 최근에 코칭을 하며 만난 부부 가운데는 여러 가지 이유로 별거를 하고, 이혼을 고려하다 결국 이혼을 한 부부, 부부싸움 후 잦은 가출을 하는 배우자로 인해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부부, 전혀 자신을 돌보지 않는 배우자로 인해 존재감이 무너지고 이혼을 하고 싶지만, 자녀들과 경제적인 이유로 어쩌지도 못하고 외부와의 소통마저 차단한 부부... 말로,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부부의 갈등과 상처는 어느새 죄책감을 넘어 수치심이 되어 그들의 존재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부부의 문제는 단순한 문제를 넘어 당사자들의 존재에 치명적인 수치심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자리에까지 나아갑니다. 여러 케이스를 만나면서 그 어떤 문제보다 부부관계에서의 문제는 어둠에서 밖으로 나와 빛을 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개인적으로도 또한 제가 만난 부부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알게 됩니다.

이 글은 부부 상담의 영역이나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는 부부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보다 코치로서, 돌보는 사람으로서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치심을 잠깐 들여다볼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우리는 모두(아마도) 수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모양이 크든 작든, 그 깊이가 깊던 얕든, 그 무게가 무겁든 가볍든. 그리고 이 수치심은 의식 중에 그리고 무의식중에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거나 제한하거나 통제합니다. 잘 드러나지 않도록 저 깊은 지하 감옥 속에 숨겨놓고 모른 채 몇 년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불쑥 그의 존재감을 드러낼 때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기도 하지요. 위의 질문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코치의 자아개념이 고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코치의 수치심이나 열등감이 돌봄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이에 대해 각자의 대답이 분명 떠오를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우리가 멀리하고 싶었고, 또 외면하고 싶었던 수치심을 조금 더 알고, 또 알아주고(인정) 보살펴주고, 응원하기를 바랍니다.

 

1. 수치심과 죄책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죄책감은 주로 Feeling about what I did와 관련하여 내가 왜 그렇게 했지?”처럼 특정한 행위에 대한 자기 비난입니다. 그러나 수치심은 Feeling about who I am으로 나는 왜 이럴까?”의 질문으로 총체적인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말합니다. 죄책감이 의식에 머무른 감정이라면 수치심은 무의식에 있는 매우 강한 감정입니다. 이 둘은 구분이 되지만 종종 죄책감은 수치심과 함께 발생하며 상당 부분 중복이 됩니다. 수치심은 우리 자신에 대한 모든 느낌과 더 나아가 다른 사람과 관계된 우리의 모든 것에 영향을 줍니다. (Michael Lewis)

 

2. 수치심의 도피 방향 (The Compass of Shame_Nathanson, 1992)

수치심은 다음 네 가지의 모습으로 도피를 합니다.

1) Attack Other (Avoidance, Blaming, Lashing out) 이 모습은 타인을 자꾸 비난하고 힐난하는 도피의 단계입니다. 타인에 대해 혹평하고 공격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며, 누군가를 비난함으로 상대가 상처를 입으면 거기에서 통제감을 느낍니다.

2) Attack Self (Self-criticism, Self-harm) 이 모습은 끊임없이 자기를 비난하는 도피의 단계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과 문제를 무조건 자신 안에서 발견합니다. 우울과 자학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3) Withdrawl (Isolation, Hiding) 이 모습은 수치심으로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단계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고, 세상을 차단하고 숨어버립니다.

4) Avoidance (Denial, Addictions) 이 모습은 자신이 수치심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자신이 열등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회피하고 다른 것에 중독으로 발전합니다.

 

3. 부정된 수치심(bypass shame, 간과된 수치심)

자신의 수치심, 혹은 열등감을 직면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으면 수치심은 위 네 단계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만약 코치가 자신의 수치심을 인지하지 못하고, 또 부정하게 된다면 고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때, 고객을 비난하거나 힐난하게 됩니다. 또 스스로 자책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코칭 내가 말아먹었네, 죽 쒔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

전문가들은 우리 삶에서 나타나는 수치심의 부정적인 결과는 대부분 간과된 수치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수치심에 직면하는 것은 자기의 결함 일부를 대면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므로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치심을 은폐하거나 비밀로 하면 수치심은 지속됩니다. 그렇다면 수치심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수치심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만 아니라 누군가를 돕는 코치로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1) 먼저 수치심을 직면하기 위해 맥락을 이해해야 합니다. 수치심은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것(정상화),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주로 어린 시절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important others)으로부터의 경험으로부터 생겨났다는 경험과 지식을 공유해야 합니다.

 

2) 수치심의 강력한 힘은 단절(disconnection)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가족의 비밀, 부부의 은밀한 상처 등은 수치심을 보존하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인정함으로부터 수치심을 꽁꽁 싸매고 있는 것을 언박싱할 준비가 됩니다.

 

3) 마지막으로 수치심을 주장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코치들에게는 너무도 든든한 동료코치들이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겠지요. 우리(코치)의 수치심을 빛으로 꺼내놓을 때, 우리를 만나는 고객들 또한 그들의 문제와 수치심을 용기 있게 꺼내놓을 수 있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취약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상대가 그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확인하고 자신이 그런 민감한 이야기를 하고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_ Harriet Lerner.

 

저는 저의 수치심을 응원합니다. 또한, 제가 만나는 고객들이 안전하게 그들의 수치심을 언박싱하기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코치 및 돌봄을 하는 분들이 먼저 수치심을 용기 있게 빛으로 드러내기를 응원합니다. 아래 질문을 통해 우리의 수치심을 들여다보여 글을 맺습니다.


성찰 질문

1. 나의 수치심은 무엇인가요? 나의 수치심의 시작은 언제 무엇 때문이었나요?

2. 나의 수치심의 화살의 방향은 누구를 향해 있나요

 

 

 

 

 

댓글목록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우리 안에 있는 수치심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알려주는 깊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의 경우도 코칭을 만나고 나서야 제 안에 깊은 수치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 스스로에 대한 부적절감 등이 온통 저를 사로잡아 남 눈치보며 제 자신을 비난하는 방향으로 가 있었습니다. 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 안에 수치심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나눔으로써 가벼워졌으면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을때 비로소 자유함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통해 수치심에서 자유로워 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