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의 모먼트 마법의 주문 (a.k.a.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차 예원 코치 (KAC)
국제코치훈련원 전문위원
한국부부행복코칭센터 전문위원
제5기 전문코치훈련아카데미 위원
인간만이 자신과 맞지 않는 다른 존재를 성가시게 여긴다고 하던데,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가족 구성원들과 댁내 편안하게 지내십니까? 부부간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형제간의 관계 속에서 원활한 소통을 이어가며, 서로 이해가 되는 관계가 유지되고 계십니까?
“요즘 어떻게 지내요?” 사춘기 자녀가 있는 엄마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드린다면, 평균적으로 편안함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함 또는 걱정이 앞섭니다. 아무래도 자녀의 성장 발달 과정상 사춘기의 시기를 지나고 있으므로 자녀의 변화하는 태도, 성격, 관심사, 가치관 등에 적응하느라 지친 엄마들일 수도 있고, 빡쎈 K-입시제도 아래에서 진학지도에 지친 엄마들일 수도 있고, 방황하는 사춘기 자녀를 걱정하는 엄마들일 수도 있고, 어쨌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오롯이 삶으로 받아들이느라 불안함이나 걱정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못마땅해하거나 불편하게 여길 때 우리는 엄청난 기운을 소모하게 됩니다. 우리의 힘이 줄줄 흘러나갈 구멍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내 가족이 내 입맛에 맞게 행동해줬으면 하는 서로의 바램과 서로의 기대가,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고, 어쩌면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어떤 식으로 다뤄야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요? 최근에 읽었던 책의 한 챕터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의 한 챕터입니다.
[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탓하기를 좋아합니다. “만일 내 부모님이 다른 분이었다면... 직장 동료들이 그렇게 못되게 굴지만 않았어도... 정치인들만 좀 제대로 했어도...” 그런 굴레에 자꾸만 빠지는 인간의 속성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아의 근본적인 속성이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삶이 힘들어지고 심리적 압박을 겪을 때, 남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훨씬 편한 데다가,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깐요.
세상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합니다. 변화의 방향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대체로 무관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누군가가, 내 생각대로 바뀌어야만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압박감, 슬픔, 외로움, 불안, 초라한 기분에 시달린다면 보통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집착하며 좀처럼 놓지 못하는 어떤 ‘생각’이 불행감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은 대체로 그 자체로 보면 꽤 합리적이고 그럴싸합니다. 누군가가 뭘 “했어야 했다”라는 식이죠. 예컨대 “아빠는 그러지 말아야 했다. 엄마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명색이 친구들인데 그런 건 기억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자식들이 좀 더 돌봐줬어야지. 상사가 그 정도는 알았어야지. 배우자가 말이나 행동을 다르게 했다면....” 하는 식이지요.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생각은 ‘내가 그랬어야만 했다’라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내가 달라졌어야 했는데, 내가 더 현명했어야 하는데, 내가 더 열심히 일했어야 했는데, 더 돈이 많았어야, 더 나았어야, 더 날씬했어야, 더 성숙했어야 했는데...” 이 함정에 빠지면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불쾌하고 불편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나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
누군가와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싶고,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면, 그 방법은 딱 한 가지뿐입니다. 그들을 그 모습대로 좋아하는 겁니다. 사춘기 자녀의 이해 되지 않는 모습들, 기대 이하의 모습들,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과 사고들, 예측 불가능한 감정과 생각의 기복들과 잘 지내고 싶다면, 그냥 그 모습 그대로를 좋아하는 겁니다.
가깝게 삶을 나누는 지인들의 가정에 개성이 강한 사춘기 자녀들이 있습니다. 신생 아이돌 그룹을 내가 키워준다는 개념으로 아이돌 그룹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는 자녀,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너무 좋아해서 본인이 직접 가발과 옷, 구두를 제작하거나 구입해서 입고, 화장 및 분장까지 하고 커스튬을 뽐내는 모임에 즐겨 가는 자녀, 엄마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고,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에 다른 것에 집중하는 모습이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마음을 한마디라도 표현했다가는 당장 사춘기 자녀와 대화가 단절됩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갈등 관리 차원에서 눈 딱 감고, 하고 싶은 무수한 말들을 참아내며 지지해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엄마로서, 인생 선배로서, 자녀들의 모습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어때야 한다는 당위를 살짝 내려놓고, ‘내가 실은 그다지 아는 것이 없다’라는 사실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질풍노도 시기의 깊은 속마음을 실은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서도 실은 알지 못하므로 내 방법과 생각을 확신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다 알고 있다’ ‘내 방법이 맞는 방법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더 힘들게 하는 지름길 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해집니다. 어디까지 참아야 하고, 어디까지 내려놔야 하나 답답할 뿐입니다.
세상이 마땅히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다 안다고 상상하는 것, 자녀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다 안다고 상상하는 것, 우리 가족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다 안다고 상상하는 것,,, 그러나 세상의 모습과 자녀의 모습과 가족의 모습이 내 생각과 맞지 않으니 울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에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뇌인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겁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
옳고 그름을 따져야만 하는 것이 우리 안에 거의 본능처럼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옳다, 그르다 개념 너머에 너른 들판이 있고, 그 들판에서 존재와 존재가 인격적으로 만나게 될 때, 옳다는 것은 결코 핵심이 아닙니다. 너른 들판에서는 그냥 그 모습 그대로를 좋아해 주는 자유함과 너그러움, 넉넉한 이해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라는 주문을 외우며, 우리 가정들의 모습이 너른 들판 위에 따뜻하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찰 질문
1. 내가 가족 구성원들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2.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라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