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너머에 평온함이 있다.
방송희 코치(KSC, PCC)
국제코치훈련원 전문 코치
라이프 코치/갈등관리 전문 코치
한국코치협회 인증심사위원
많은 눈이 내리고 영하의 날씨가 며칠째 이어지던 토요일 아침, 마당에 얼음이 얼어 있고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지붕에서 홈통을 타고 내려온 물이 얼어 팔뚝만 한 고드름이 되어 석순처럼 서 있고 마당으로 흐르던 물은 빙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밤사이에 얼마나 추웠으면 아래로 흘러내리던 물이 얼었을까? 날씨가 계속 춥다고 하는데 홈통이 지붕 끝까지 얼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홈통이 터지게 되는 건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안감이 솟아오르며 온몸이 뻣뻣해졌습니다. 그리고 몇 해 전 겨울, 홈통이 꽁꽁 얼면서 통통해져 이음새가 벌어졌던 광경도 떠올랐습니다.
잠시 후 저는 평정심을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2월 8일, 2월도 어느새 중순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안심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부산에는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도 있었고, 눈 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를 보았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이미 땅 밑에서는 봄의 기운이 올라오고 있잖아 하는 생각이 불안감을 몰아내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4계절 중 겨울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추위도 많이 탔고, 1~2월의 세상은 흑백으로 단조롭고 암울하며 몹시도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1월 언젠가부터 매화나무에 맺힌 꽃봉오리가 얼마나 커졌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살펴보며 더디오는 봄에 조바심을 내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겨울의 단조로움과 이동에 부자유함을 지루해하고 있었음을, 봄의 따스함과 변화무쌍함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지금 저는 겨울을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겨울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그 계절만이 주는 매력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코끝이 쨍하고 눈물이 날 만큼 파란 하늘, 한때를 그대로 간직한 마른 화초들, 새하얀색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마법 같은 눈, 땅바닥에 몸을 붙이고 바짝 엎드려 초록 잎을 간직한 식물들, 그 속에 꽃봉오리를 품은 작은 생명이 있고, 가지가지마다 꽃눈을 품고 키워내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월은 봄 사냥을 다닐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여기저기에서 새 생명의 흔적을 발견할 것이고, 희망을 만날 것입니다.
무엇이 저의 추위와 불안함을 기대감으로 바꾸어놓았을까요? 1, 2월에 저의 경험이 달라졌고, 그것은 저의 관찰을 통한 새로운 발견 덕분이었습니다. 얼음을 들여다보니 그 아래 물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눈길을 걷는 옆에 생생한 이끼무리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얀 눈 위에 초록의 풀잎이 ‘나 여기 있어요’하고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뭇잎 더미 속에 진한 잎 한 자루가 삐죽이 나와 있었고, 얼어붙은 땅이 살짝 올라온 곳에는 붉은 싹들이 옹기종기 모여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솜털 보송보송한 작은 꽃송이들도 있었고. 눈 이불을 뒤집어쓴 활짝 핀 노란 꽃들도 있었습니다. 길가의 나뭇가지에는 어느샌가 볼록 배를 가진 눈들이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해, 두 해, 이어지는 발견의 경험은 저의 생각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지금의 추위는 곧 다가올 봄기운을 예비하는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눈은 눈이어서 아름답고 추위는 이때만 누릴 수 있으니 잠시 동안 같이 지낼만하다. 당장 눈앞에 닥친 추위와 눈 얼음 앞에 압도되고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마음 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비단 1, 2월에 한정되지 않고 경계를 넓혀 갔습니다. 갑자기 마주한 불편한 순간, 잠시 당황하기도 하고 얼음이 되기도 하지만, 곧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너머의 것을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지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정의 바다가 꽤 평온합니다. 때로는 청명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고 느껴져서 행복감에 젖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이 비단 저에게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순간에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고 발견해내는 경험들을 쌓아간다면, 어느 순간 불안에 휘둘리지 않고 그 너머의 평온을 그려보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2월의 이 시간, 땅에서 하늘에서 태어나고 있는 생명을 발견하고, 그 너머의 무언가를 찾아내는 보물찾기를 해보실까요?
글을 마치며 이 시가 떠오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성찰 질문
1. 지금 내 삶에서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요?
2. 삶에서 ‘겨울’ 같은 시기가 찾아올 때,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