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코칭
황현호 원장
국제코치훈련원 원장
한국부부행복코칭센터 원장
아주대학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광운대학교교육대학원 겸임교수
숭실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전, ICF코리아챕터 회장
코칭에서 바라보는 '나'와 '너'의 새로운 관계
코칭 현장에서 우리는 종종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고객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접근 자체가 코칭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상학적 관점에서 보면, 코칭은 '문제를 가진 객체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살아 숨 쉬는 관계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관계 속에서 태어나는 의미
철학자 후설이 발견한 '지향성'의 개념은 코칭에서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의식은 항상 무엇인가를 향하고 있으며, 이때 주체와 객체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 구조를 이룬다. 코칭 세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코치가 고객을 바라볼 때, 그 시선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다. 그 순간 코치의 존재 전체와 고객의 존재 전체가 만나면서 새로운 의미의 장이 열린다. 고객의 이야기는 코치와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색깔을 입고, 코치 역시 고객의 세계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세계-내-존재로서의 고객 이해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개념은 코칭에서 고객을 이해하는 근본적인 틀을 바꿔준다. 고객은 진공상태에서 고립된 개체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가족, 직장, 사회라는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존재다.
예를 들어, "승진이 어려워서 고민"이라고 말하는 고객이 있다면, 이는 단순히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다. 그 고객에게 '승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들의 삶의 맥락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함께 탐색해야 한다. 코치의 역할은 문제를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대화 속에서 펼쳐지는 변화의 가능성
코칭 대화는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 존재가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창조적 행위다. 코치의 질문 하나하나는 고객의 세계에 새로운 빛을 비추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측면들을 드러낸다.
이때 중요한 것은 코치가 미리 준비된 답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코칭은 코치와 고객이 함께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여행과 같다. 코치는 지도를 가진 안내자가 아니라, 함께 길을 찾아가는 동반자다.
실천적 접근: 현상학적 코칭의 핵심 원칙
첫째, 선입견 중단하기 (Epoché)
고객에 대한 판단이나 해석을 잠시 멈추고, 그들이 경험하는 현상 자체에 주목한다. "이 사람은 자신감이 부족해"라는 분석보다.는 "지금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라는 현상 탐색이 더 깊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둘째, 관계적 현존 (Relational Presence)
코칭 세션에서 온전히 현존하는 것은 단순히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코치 자신의 존재 전체로 고객과 만나고, 그 만남의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셋째, 의미 공동창조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함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만든다. "그 경험이 고객님께 어떤 의미인 것 같나요?"라는 질문이 바로 이런 공동창조의 시작이다.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현상학적 관점에서 보면, 변화는 새로운 정보를 얻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존재가 자신의 세계와 맺는 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때 일어난다.
고객이 "아, 내가 그동안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구나"라고 알아차릴 때, 그것은 단순한 인지적 이해를 넘어선 존재론적 전환이다. 이런 전환은 코치의 조언이나 기법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다. 오직 진정한 만남과 탐색의 과정에서만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코치의 새로운 정체성
코칭에서 코치는 전문가가 아니다. 코치는 고객의 세계를 함께 탐험하는 호기심 많은 동반자다. 이는 코치의 전문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진정한 코칭 전문성은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여는 능력에 있다. 고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도 그 이야기 너머의 침묵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 말하지 않는 것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섬세함이 바로 코치의 전문성이다.
실무 적용을 위한 구체적 가이드
코칭 세션 전
• 고객에 대한 기존 정보나 판단을 의식적으로 내려놓는다.
• "오늘 이 사람과 어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까?"라는 열린 마음으로 준비한다.
코칭 세션 중
• 고객의 말을 '분석'하려 하지 말고, 그 말이 담고 있는 '세계'를 느껴본다.
• "그때 어떤 기분이었나요?"보다.는 "그 순간 어떤 세계가 펼쳐졌나요?"라는 식으로 질문한다.
•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침묵은 새로운 의미가 태어나는 공간이다.
코칭 세션 후
• "내가 뭘 잘했나?"보다.는 "우리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를 성찰한다.
• 고객과의 만남이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살펴본다.
코칭의 존재론적 차원
코칭은 기술이 아니다. 코칭은 두 존재가 만나 서로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예술이다. 현상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진정한 변화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며, 그 관계는 미리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창발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코치로서 우리의 과제는 이런 창발적 만남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질문하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고객의 세계와 진정으로 만날 때, 변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성찰 질문
1. 나는 코칭 세션에서 고객을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가, 아니면 '함께 탐험할 동반자'로 보는가?
2. 코칭 세션을 "의미가 창발하는 관계의 장"으로 본다.면, 나는 어떤 태도로 그 공간에 참여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