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에서 취약함 드러내기
황현호 원장
국제코치훈련원 원장
한국부부행복코칭센터 원장
아주대학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광운대학교교육대학원 겸임교수
숭실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전, ICF코리아챕터 회장
코칭 현장에서 18년 넘게 리더들을 만나며 확인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변화의 진정한 순간은 고객이 완벽한 답을 찾았을 때가 아니라, 자신의 가장 깊은 두려움과 불안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바로 그 순간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1889년 토리노 광장에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채찍에 맞는 말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린 사건은 단순한 일화가 아니다. '힘 의지'와 '초인' 사상으로 강인함을 추구했던 그가 보여준 이 극적인 연민의 순간은 현대 코칭에 중요한 통찰을 준다.
그의 눈물은 자신의 내적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용기였다. 진정한 강인함은 취약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통합하는 데서 나온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ICF의 8가지 핵심역량 중 '신뢰와 안전감 조성하기(Cultivates Trust and Safety)' 역량의 6번째 세부 항목은 '취약함을 드러내고 고객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개방성과 투명성을 보여준다(Demonstrates openness and transparency as a way to display vulnerability and build trust with the client)'고 명시한다.
이는 단순히 고객의 취약함을 수용하라는 것을 넘어선다. 코치 자신이 먼저 적절한 수준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통해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고객이 안전하게 자신의 진실을 나눌 수 있는 심리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전 세계를 사로잡은 '케데헌'과 BTS 현상을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BTS는 한국어 가사의 곡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으로 빌보드 핫100 차트 62년 역사상 처음으로 비영어 곡 1위를 달성했다. 이는 단순한 음악적 성취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BTS의 성공 비결은 화려한 퍼포먼스만이 아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Love Myself' 메시지, 내면의 고민과 성장 과정을 솔직하게 담은 가사들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진정성 있는 자기 이야기는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보편적 공감을 만들어낸다.
코칭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작동한다. 고객이 자신의 '내면의 데몬'들을 표현할 때, 코치가 이를 판단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진정한 치유와 성장의 문이 열린다.
구글이 180여 개의 팀을 2년간 분석한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에서 고성과 팀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으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발견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팀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두려움 없이 이야기할 수 있고, 더 좋은 성과를 위하여 위험을 감수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이는 코칭 관계에서도 핵심적이다. 고객이 자신의 실패, 두려움, 불안을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진정한 성장이 가능해진다. 코치의 역할은 바로 이런 심리적 안전감을 만드는 것이다.
국제코치훈련원의 TRAIN 철학은 취약함이 어떻게 성장의 동력이 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Treasure(보물): 지금 이 순간의 불완전한 '나'도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
Real(진짜): 가면을 벗고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는 용기
Am(존재):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
I(나):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고유한 개별성의 인정
Now(지금): 과거의 상처나 미래의 불안이 아닌 현재 순간의 힘
고객이 "저는 항상 실패가 두려워요"라고 털어놓을 때, 숙련된 코치는 이를 문제가 아닌 성장의 출발점으로 인식한다. 그 두려움 속에 숨어있는 성공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내적 가치를 함께 탐색해 나간다.
역설적이게도 코치 자신의 적절한 취약함 표현이 코칭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든다. 예를 들어, 코치가 "저도 과거에 비슷한 두려움을 경험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어떤 마음이셨는지 조금 더 나눠주시겠어요?"라고 요청할 때, 고객은 코치를 완벽한 존재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로 인식하게 된다.
물론 이는 섬세한 균형이 필요하다. 코치의 자기 공개는 항상 고객의 성장을 위한 목적이어야 하며, 코칭의 초점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케데헌이 보여주듯 내면의 악령과의 싸움은 일회성이 아니다. 성장의 여정도 마찬가지다. TRAIN이 상징하는 기차처럼, 우리 삶은 계속 움직이며 새로운 역에서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만난다.
중요한 것은 각 순간마다 자신의 취약함을 숨기지 않고 그것을 성장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니체가 토리노 광장에서 보여준 것처럼, 진정한 용기는 약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코치는 이러한 여정에서 고객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함께 진정성 있는 변화의 길을 걸어간다. 완벽함을 향한 여행이 아니라,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여행 말이다.
성찰 질문
1. 나는 고객 앞에서 나의 인간적인 면모를 적절히 드러내고 있는가, 아니면 완벽한 전문가로 보이려 애 쓰고 있는가?
2. 고객이 취약함을 표현할 때 나는 어떤 내적 반응을 보이며, 그것이 코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