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아닌 코치로, 친정엄마의 마음을 만났습니다
이성미 소장(KPC, 스마일에너지코치)
현, 가족웃음연구소 소장
현, 국제코치훈련원 전문위원
현, 한국부부행복코칭센터 전문위원
현, 한국코치협회 편집국 위원
현, (사) 감사나눔연구원 사무총장
현, ㈜ 이부커스코리아 감사
작년 11월, 친정 부모님 두 분이 같은 날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낙상으로, 엄마는 교통사고로 인해 척추 고정술을 받으셨어요.
엄마는 무릎 인대까지 크게 다쳐 오랫동안 병상에 계셔야 했고,
조금 먼저 퇴원하신 아버지는 비접촉 교통사고로 다시 입원하셨습니다.
두 분 다 고령이셨기에 긴 병상 생활로 지친 부모님의 고통은 몸을 넘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인지 기능도 서서히 약해지시면서 치매 진단까지 받으셨어요.
그때부터 제 삶의 시계는 부모님께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환하게 웃으시던 두 분의 표정이 점점 흐려지는 모습을 보는 일은 참 아팠습니다.
엄마는 새벽마다 멍하니 깨어 계시는 날이 늘었고, 아버지는 지나가는 차량만 봐도 온몸이 긴장되셔서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섭다고 하셨습니다. 수술 이후 균형을 잃은 엄마는 지팡이를 짚고도 걷기 힘드셨는데, 부축할 때마다 제 손목을 너무 꽉 잡으셔서 멍이 들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의 한숨은 들을 때마다 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걷기 운동을 하던 중 유난히 기운이 없어 보이시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래, 나는 코치다. 지금, 이 순간, 엄마의 마음을 진심으로 들어드리자.’
그 순간, 저는 엄마와 코칭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엄마, 코칭 한번 해보실래요?”
“코칭? 그게 뭔데? 그래, 해보자.”
엄마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셨고, 저는 그 순간, 딸이 아닌 코치가 되었습니다.
“이 시간, 코칭을 함께할 이성미 코치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익숙하지 않은 존댓말로 대화를 시작한 엄마는 조용히 ‘고객’의 자리에 앉아 주셨습니다.
“호칭은 어떻게 불러드릴까요?”
“천사요.”
“와 천사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런데 왜 천사님이신가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요.”
소녀 같은 미소와 함께 건넨 그 대답에서 신앙이 엄마 삶에 어떤 힘이 되어왔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천사님, 84년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셨나요?”
“18살,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요.”
“그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너무 기뻐서… 날아갈 것 같았어요.”
짧은 말 속에는 외할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유년 시절의 외로움과, 평생을 신앙 하나로 살아온 엄마에게 하나님이 건네신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천사님을 보시고 뭐라고 하실까요?”
잠시 엄마는 생각에 잠기셨습니다. 잠시 후 나지막하게 속삭이셨어요.
“…내가 다 안다…”
엄마의 눈빛이 흔들리고, 목소리엔 깊은 울림이 실렸습니다.
그 순간, 제 가슴도 뭉클하게 뜨거워졌습니다.
잠시 후, 엄마는 잔잔하게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그래, 하나님이 다 아시지. 이제 우울해하지 말고 운동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겠어.”
“지금 기분은 어떠세요?”
“행복해요.”
그날 저녁, 벤치 위에서 피어난 엄마의 미소는 캄캄했던 엄마의 마음속 하늘을 밝혀주는 별빛 같았습니다. 계속된 코칭 대화를 통해 몸이 회복된다면 해보고 싶은 일, 남은 시간에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가치에 대해 진심을 담아 묻고, 조용히 귀 기울였습니다.
그날의 코칭은 제 마음 깊은 곳에 하나의 선물처럼 남아 있습니다.
특히 엄마와의 코칭이 의미 깊었던 건, ‘행복한 나를 찾기’라는 주제로 엄마가 가장 먼저 실행하고 싶다고 말씀하신 일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삶의 끝자락까지 스스로 준비하고 싶다는, 남은 시간을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가겠다는 엄마의 단단한 의지를 알게 됐고 바로 다음 주, 건강보험공단에 함께 가서 의향서를 제출했습니다.
모든 절차를 마친 뒤 엄마는 크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제야 속이 시원하다. 마음이 참 편해. 밀린 숙제를 한 기분이야.”
한 번의 코칭이 엄마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고, 그 울림은 가족의 일상에도 스며들었습니다. 그날 벤치에서 나눈 대화는 엄마의 하루를 밝히고, 제 삶에도 따뜻한 빛을 더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엄마가 제 손을 꼭 잡고 들려주신 말은 지금도 제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줍니다.
“코치님, 제 이야기 다 들어줘서 고마워요. 우리 또 해요, 코칭.”
코칭이 아니었다면, 엄마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딸이 아닌 코치로 곁에 있었기에, 판단 없이 듣고 온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듣는다는 건 기술 이전에, 진심을 다해 존재로서 건네는 따뜻한 태도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가족의 마음을 여는 일은 때로 낯선 이와의 대화보다 더 깊은 용기와 세심한 진심을 필요하기에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코칭은 그 마음에 다가가 잊고 있던 마음과 감정을 불러내고, 서로를 다시 이해하며 바라보게 합니다. 무엇보다 진심 어린 질문과 경청은 위로를 넘어 마음에 힘과 희망을 건네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꽃 한 송이를 품고 있다. 그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따뜻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김춘수-
코치로 살아간다는 건, 그 꽃이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곁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은 누구의 마음 곁에 머물러 계신가요?
[성찰 질문]
1. 나의 ‘천사님’ 곁에, 나는 어떤 코치로 존재하고 싶나요?
2.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힘과 행복을 더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