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윤지숙 코치(KAC)
국제코치훈련원 전문위원
한국부부행복코칭센터 전문위원
청소년진로 / 학습코치
디지털 / 코딩 전문강사
가족코칭지도사
"바주데바는 매우 주의 깊게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는 싯다르타가 이야기하는 내력, 유년 시절, 배움, 구도 행위, 기쁨, 곤경, 이 모든 것을 경청하면서 자기 내면에 받아들였다. 이것이야말로 뱃사공의 가장 큰 미덕들 가운데 하나였으니, 남의 말을 그보다 더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싯다르타는 바주데바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가 하는 말을 고요하게, 마음을 툭 터놓고, 느긋하게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바주데바가 자기가 하는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초조하게 다음 말을 기다리는 법이 없이, 자기가 말하는 중에도 칭찬의 말도 꾸중의 말도 하지 않고서, 다만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만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싯다르타는, 이런 식으로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자신을 고백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다 자신의 인생, 자신의 구도 행위, 자신의 고뇌를 털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느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 속 '바주데바'라는 인물을 통해 경청에 대해 배웁니다. 고요히 이야기를 귀 담아 들어주고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여 주는 바주데바의 곁에서 싯다르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습니다.
코칭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실습 대상이 필요해 남편에게 종종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이다 보니 일상 대화와 구별이 되도록 더욱 심혈을 기울이며 갓 배운 코칭 프로세스에 따라 하나하나 질문을 해나갔습니다. 아직은 입에 익지 않아 어색하기만 한 질문들을 내뱉으며 중간중간 흐름이 뚝뚝 끊기기도 하는 어설픈 코칭이었죠. 스스로는 마냥 부족하고 부끄러운 코칭이었지만, 남편은 늘 코칭 시간이 너무 좋다며 항상 기다려진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니 당연히 좋을 수밖에요. 그간 얼마나 많은 지적과 평가를 하며 대화를 해왔었는지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코칭을 하면 할수록 경청이 더욱 어렵게 느껴집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고객에게서 키워드나 답을 찾아내기 위해 한껏 주의를 기울이며 귀를 쫑긋 세우고 듣게 됩니다. 고객이 말하지 않은 것까지 잘 파악하기 위해서요. 메러비안의 법칙에서 말하는 것처럼 언어적 요소(7%)만 듣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와 표정 등 비언어적 요소(93%)까지, 이 중에서 몇 퍼센트나 들을 수 있는지가 경청의 능력을 나타내는 점수라고 착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아무래도 코치 자격시험에서 실질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이라 더욱 신경이 쓰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말하지 않은 것까지 들을 수 있는 능력보다 더 좋은 것은 안전감과 신뢰감을 바탕으로 고객이 더 많이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남편은 평소 저보다 말이 훨씬 많은 사람이었는데도, 정작 그동안 본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온전히 한 적이 없었다는 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스마트폰 속에서 24시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한다고 여기지만, 정작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 연인, 친구 사이에서도 대화의 시간을 내기가 참으로 어려운 요즘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바주데바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싯다르타처럼,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 행복을 전해줄 수 있다면 이 또한 더없이 큰 행복이 아닐까요.
성찰 질문
1. 최근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 적이 있었나요?
2. 나의 이야기를 가장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3.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청’의 태도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