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다
황현호 원장
국제코치훈련원 원장
한국부부행복코칭센터 원장
아주대학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광운대학교교육대학원 겸임교수
숭실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전, ICF코리아챕터 회장
코칭 현장에서 고객들과 만나다 보면, 감정에 대한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저는 원래 화를 잘 내는 성격이에요", "불안감이 자꾸 올라와서 어쩔 수 없어요"라는 표현들이 그것이다. 마치 감정이 우리 안에 미리 설정된 프로그램처럼 작동한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심리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의 혁신적인 연구는 이러한 통념을 완전히 뒤바꾼다. 그녀의 구성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에 따르면, 감정은 뇌가 개념을 바탕으로 구성해낸 예측의 결과라는 것이다. 배럿 박사는 감정이 우리 뇌 속에 미리 프로그래밍된 생물학적 반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 우리가 경험한 수많은 개념과 맥락, 그리고 몸의 감각 신호를 바탕으로 뇌가 실시간으로 구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외부 자극에 자동적으로 반응한 것이 아니라, 뇌가 예측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이는 코칭에서 다루는 '관점의 전환'과 맥을 같이 한다.
배럿 박사팀이 진행한 실험은 개념의 힘을 명확히 보여준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동일한 얼굴 표정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한 그룹에게는 '분노', '공포' 같은 감정 이름을 미리 알려주었고, 다른 그룹에게는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감정 개념을 알고 있는 참가자들은 특정 감정을 볼 때마다 심장 박동, 피부 전도 반응 등 신체적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반면 감정 이름을 모르는 그룹은 그런 반응이 미미했다. 이는 감정의 '이름'이라는 개념 하나가 뇌의 예측 시스템을 바꾸고, 실제로 몸의 생리 반응까지 조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론은 코칭 실무에 강력한 통찰을 제공한다. 감정이 고정된 반응이 아니라 구성된 예측이라면, 우리는 클라이언트가 새로운 감정적 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클라이언트가 "스트레스받아요"라고 표현할 때, 코치는 더 구체적인 감정 언어를 탐색하도록 돕는다. "그 스트레스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느낌인가요? 답답함인지, 압박감인지, 아니면 불확실함에 대한 불안인지요?" 이러한 정교한 감정 표현은 클라이언트의 감정 조절 능력을 향상시킨다.
"이 느낌은 불안이 아니라 기대일 수 있다"는 재개념화는 고객의 신체적 반응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같은 심장 박동과 손 떨림도 '불안'으로 해석하면 위축되지만, '설렘'으로 재해석하면 에너지로 전환된다. 감정이 훈련된 예측이라는 관점에서, 코치는 고객에게 새로운 개념과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동일한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감정적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배럿 박사의 연구는 감정 역량 개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감정을 통제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더 풍부하고 정교한 감정 어휘를 개발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감정 개념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는 코칭에서 추구하는 '자기 인식'과 '선택의 자유'와 정확히 일치한다. 고객이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감정적 반응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코치로서 우리는 고객이 감정의 '피해자'가 아니라 '창조자'임을 인식하도록 도울 수 있다. 감정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구성해나갈 수 있는 경험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정에 대한 풍부한 어휘와 개념적 틀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고객이 자신만의 감정 사전을 만들어가며, 더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감정적 경험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감정의 구성적 특성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고객과 함께 더 나은 감정적 현실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성찰 질문
1. 나는 평소 어떤 감정 단어들을 가장 자주 사용하고 있을까?
2. 최근에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을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불러본다면 어떤 단어가 어울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