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과 공(空)이 부리는 요술
김향진 코치 (KPC, PCC)
국제코치훈련원 전문코치
TRAIN 코칭프로그램 FT
기관KAC인증심사위원
한국버츄프로젝트 FT
어린아이의 손톱만 한 자줏빛 꽃받침 속에서 하얀 알맹이가 서로 다른 크기로 조금씩 드러나는 모습이 마치 옥수수 팝콘이 나무에 걸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벚나무에서 피어나는 꽃망울들이 내 마음에 웃음꽃으로 피어나는 행복한 순간이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로 버텨내는 모습이 애처롭고, 걱정돼 보였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음을 온몸으로 지금 보여주고 있다. 바라보는 내 마음이 안타깝고 걱정되었을 뿐 그들 각자의 시간표대로 건강하게 진행되어가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꽃봉오리가 맺으면 맺힌 모습 그대로, 꽃이 피면 피어난 모습 그대로, 우리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 늦게 핀다고 재촉하지도 않고, 빠르게 피었다고 혼내지도 않을뿐더러, 좀 더 오랫동안 피어있으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해넘이를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히 바라보게 되는 그 마음과 같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불편한 감정들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그대로 온전히 관망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책에서 만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글귀에 관심이 쏠렸다. 불교 수련자의 글과 불교대학 교수님의 글을 읽고 정리된 생각을 적어본다.
먼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모든 형상 있는 것은 그 본질이 비어있으며, 그 비어있음은 곧 형상 있는 것들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좀 더 현실적인 이해가 필요해 찾아보니 이러한 설명이 있다, ‘내가 경험하는 생각, 감정, 느낌, 상황 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것이다(색즉시공 色卽是空). 그리고 그 비어있음(空)을 깊이 받아들일 때 매 순간의 삶이 생생한 현실로 드러난다(공즉시색 空卽是色). 이러한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통제하거나 붙잡으려는 욕망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이어서 원효대사의 일화로 이해를 돕고 있다.
‘원효대사가 불법을 연구하기 위해 당나라로 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잠을 자다가 목이 너무 말라 깨어났다. 손을 더듬어 보니 웬 그릇에 물이 있어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고 잤다. 아침에 깨어나 보니 옆에 해골바가지가 놓여 있었다. 어젯밤에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인 것을 알고 나니 구역질이 났다. 깨끗함과 더러움이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깨끗한 느낌으로 드러날 때도 있고, 더러운 느낌으로 드러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깨끗함과 더러움 자체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답답하고 짜증 나고 화가 난 것은 내 몸에서 경험되는 것일 뿐 어떤 고정된 실체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내 몸이 경험하고 있는 불편하고 무거운 감정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변화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하라는 것이다. 나를 휘감고 도는 불편한 감정을 만능접착제처럼 고정된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가볍게 떼어낼 수 있는 포스트잇 정도로 여긴다면, 휘몰아치는 감정들이 요동치더라도 쉽게 떠나갈 것이기에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든지 손쉽게 떨어지는 포스트잇처럼 가벼운 존재이니 감정에 휘감겨 헤어나오지 못할 일도 없을 것이며, 언제 또다시 찾아와 나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붙잡힐 일도 없을 것이다.
오늘 오전에 '설득하는 방법 찾기'를 목표로 코칭을 받았다. 평소와는 달리 웅변하는 것처럼 힘주어 말한다는 코치님의 반영이 있었다. 그동안 가둬뒀던 감정의 에너지들이 표출되느라 나도 모르게 열변을 토했나 보다. 소리 내어 충분히 표현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 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설득’이란 표현 속에서 내 생각대로 되어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마음이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인데도 내 바람 데로 하려는 욕심이 있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고 나니 코칭으로 다뤘던 이슈가 그리 중요해지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마음이 편해졌다. 그 순간이 바로 공(空)으로 전환되는 상태였으리라. 고객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신 코치님의 역할과 눌러뒀던 감정들을 마음껏 들춰낼 수 있게 도와준 신뢰로운 코칭공간의 힘도 컸다.
'설득하는 방법 찾기'에 몰두해있던 고착된 생각과 감정들에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관점이 생기니 ‘내가 왜 그렇게 열을 올렸을까’ 웃음이 나온다. 새어 나온 그 웃음의 자리에 봄의 평화와 기쁨이 벚꽃처럼 피어오른다. 참으로 오묘하다. 공(空)과 색(色)이 부리는 요술을 깨어있는 마음으로 좀 더 자주 즐겨볼 일이다.
<성찰 질문>
1.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2. 비어있는 공(空)의 마음으로 고객을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