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체력인 인지 지구력이 학습 성과를 좌우한다
황현호 원장
국제코치훈련원 원장
한국부부행복코칭센터 원장
아주대학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광운대학교교육대학원 겸임교수
숭실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전, ICF코리아챕터 회장
공부가 힘든 이유는 뇌에도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부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고 집중하기 어려워진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이를 단순한 '뇌 피로'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뇌도 우리 몸처럼 '체력'이 필요하다는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뇌 체력을 '인지 지구력'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집중을 요하는 정신 활동을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마라톤 선수가 꾸준한 체력 훈련 없이는 완주할 수 없듯이, 우리의 뇌도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인지 지구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뇌는 계속해서 에너지를 사용하며, 이 에너지가 고갈되면 집중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문제는 모든 학생이 이러한 뇌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제적 격차가 뇌 체력 격차로 이어진다
전 세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이 인지 피로를 더 빨리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지능의 차이가 아니라, 지속적인 사고 훈련 기회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좋은 교육 환경을 가진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독립적이고 집중적인 학습을 할 기회가 풍부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뇌 체력을 기를 수 있게 된다. 반면 경제적으로 불리한 지역의 학교는 이러한 환경을 제공하기 어려워,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인지 지구력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학습 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
게임으로도 뇌 체력을 기를 수 있다는 놀라운 발견
인도의 저소득층 초등학교 학생 1,6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획기적인 실험이 이러한 가설을 검증했다.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수학 문제 풀이를, 다른 그룹은 학업과 관련 없는 퍼즐이나 도형 맞추기 같은 '비학문적 게임'을 하게 했다.
매주 1~3회, 20분씩 꾸준히 진행된 이 활동은 학생들에게 총 10~20시간의 추가적인 인지 훈련 시간을 제공했다. 태블릿 앱은 학생들의 실력에 맞춰 난이도를 조절했지만, 시각적 자극은 최소화하여 진정한 '집중'에 힘쓰도록 설계되었다.
학습 내용과 상관없는 활동도 성적을 향상시킨다
실험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수학 문제 풀이 그룹과 비학문적 게임 그룹 모두에서 학생들의 인지 지구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지적 활동에 참여했을 때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하는 성과 저하가 22%나 줄어들었으며, 학생들은 듣기 이해력, 학업 문제 해결, IQ 테스트 등 다양한 지적 활동에서 더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학습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게임 활동만으로도 학업 성적이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힌디어, 영어, 수학 과목에서 평균 0.09 표준편차만큼 성적이 올랐고, 이는 수학과 게임 그룹 모두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노력해서 생각하는 경험' 자체가 전반적인 인지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강력한 증거다.
인지 지구력 향상 효과는 지속된다
연구팀은 다양한 평가 방법을 통해 학생들의 인지 지구력 변화를 정확히 측정했다. 듣기 이해력 테스트, 레이븐 행렬 테스트(IQ 테스트의 한 종류), 표준 수학 테스트 등을 활용했으며, 이러한 테스트들은 학습 내용을 직접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인지 지구력 자체의 변화를 파악하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훈련 종료 후 3개월에서 5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인지 지구력 향상 효과가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방학 후 학업 능력이 저하되는 현상이 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더욱 의미 있는 결과다. 인지 지구력이 단기적 효과를 넘어 장기적으로 학생들의 학습 능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교실에서의 집중력도 함께 향상된다
인지 훈련은 학업 성적뿐만 아니라 실제 교실 환경에서의 집중력도 크게 향상시켰다. SART(지속적 주의 반응 과제) 테스트에서 훈련을 받은 학생들은 평균 0.048 표준편차만큼 더 좋은 성과를 보였고, 교실 내에서도 선생님의 지시를 더 잘 따르고, 수업 중 방해 요소에 덜 반응하며, 몸을 덜 움직이는 등 전반적으로 더 높은 주의력을 보였다.
이러한 집중력 향상은 수학 그룹에서 0.108 표준편차, 게임 그룹에서 0.058 표준편차로 나타났다. 인지 훈련이 단순히 시험 성적을 올리는 것을 넘어, 학습의 기본이 되는 '집중하는 능력' 자체를 강화한다는 의미다.
동기나 끈기가 아닌 실제 뇌 능력의 개선이다
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인지 지구력 향상이 단순히 학생들의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나 '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 뇌의 인지 능력 자체가 개선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연구팀은 일부 학생들에게 높은 시험 점수에 따라 보상을 제공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보상을 받은 학생들은 시험 초반에는 더 좋은 성적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인지 피로 감소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는 동기 부여가 일시적 성과를 높일 수는 있지만, 뇌의 근본적인 체력인 인지 지구력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학생들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에서도 특별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모든 결과는 인지 훈련이 뇌의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좋은 학교는 뇌 체력을 키우는 환경을 제공한다
학교 교육의 질은 학생들의 인지 지구력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이 독립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학교일수록 학생들의 인지 지구력이 더 잘 발달한다. 이런 학교에서는 교과 지식 전달을 넘어,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돕는다.
파키스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인지 지구력이 향상되었는데, 이러한 효과는 교육의 질이 더 좋은 학교에서 훨씬 크게 나타났다. 질 낮은 학교에서는 학년이 올라도 인지 지구력 향상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 좋은 학교는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집중할 수 있는 뇌 체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인지 지구력은 중요하다
인지 지구력은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들의 일상생활, 특히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직업이나 중요한 의사결정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데이터 입력 직원들의 업무 정확도를 살펴보면, 업무 시간 후반으로 갈수록 오류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며,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직원들은 이러한 정확도 하락이 두 배나 더 심했다.
투표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투표 용지에 기재된 안건의 순서가 뒤로 갈수록 유권자들이 능동적인 선택을 할 확률이 낮아지며, 경제적으로 불리한 지역의 유권자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능동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훨씬 빠르게 감소했다. 인지 지구력은 성인이 되어서도 삶의 여러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사회적 불평등과도 연결될 수 있다.
우리 모두 뇌 체력을 키울 수 있다
다행히 인지 지구력은 타고나는 고정된 능력이 아니다. 훈련을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와 가정에서 지속적인 사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태블릿을 활용한 학습이나 정기적인 평가를 통해 학생들이 장시간 집중력을 유지하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다. 집에서는 부모와 함께 집중을 요하는 보드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순히 '공부'만이 인지 지구력 훈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학 문제 풀이든 비학문적인 게임이든, 오랜 시간 꾸준히 생각하고 몰입하는 경험 자체가 뇌 체력을 길러준다.
성찰 질문
1. 나는 평소 집중력이 떨어질 때 이를 단순한 피로나 동기 부족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았는가?
2. 내 주변의 학습 환경이나 업무 환경에서 인지 지구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더 늘릴 수 있을까?
참고문헌
Brown, C., Kaur, S., Kingdon, G., & Schofield, H. (2025). Cognitive endurance as human capital.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40(2), 943-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