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대생의 선택 (우리집 이야기라면...??)
차 예원 코치 (KPC)
국제코치훈련원 전문위원
한국부부행복코칭센터 전문위원
제5기 전문코치훈련아카데미 위원
가족코칭전문가
라이프코치, 진로코치
2024학년도, 한 청년은 수많은 경쟁을 뚫고 의예과에 합격했습니다. 긴 입시 준비 끝에 드디어 의대에 진학한 그는, 설렘과 기대 속에 대학 생활을 준비했지만, 현실은 그를 곧바로 멈춰 세웠습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전공의들이 대거 파업에 들어갔고, 그 여파로 의대생들의 수업도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막 입학을 앞두고 있던 신입생은 수업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채, 공백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단기간의 혼란일 거로 생각하며 과외나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의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그는 결국 입대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준비 중 팔이 부러지며 입대 계획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몸을 회복하며 길어진 공백 속에서 그는 또 다른 선택을 합니다. 평소 관심 있던 패션 분야를 구경하다가 성수동의 팝업스토어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입니다. 의외로 패션업계는 그에게 익숙했던 과외나 학원 조교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스타일을 기획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읽어내는 일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그는 1년 가까이 패션계에서 일하게 됩니다.
2025학년도, 그는 다시 의예과 복귀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새 의대 정원이 1,500명 증원되었고, 휴학 중인 3,000명의 2024학년도 학생들과 2025학년도 신입생 4,500명이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7,500명의 신입생을 앞에 둔 의대 교육은 여전히 정상화되지 않았고, 캠퍼스는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때 그는 부모에게 말합니다. 의예과를 자퇴하고, 패션 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부모의 마음은 복잡했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의대 진학은 단지 한 사람의 진로 선택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족 모두의 긴 시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며, 안정된 미래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보증 수표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자녀가 어렵게 들어간 의대를 자퇴하겠다는 말은 단순한 진로 변경이 아니라, 부모가 투자한 시간과 감정, 그리고 신념 자체에 대한 부정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의대 입시는 단순한 시험이 아닙니다. 요즘은 '7세 고시', '4세 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기 교육이 일반화되어 있고,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한 선행 학습이 시작됩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수능 최상위권을 목표로 매일 12시간 이상 공부하고, 내신·모의고사·비교과 활동까지 챙겨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의대 진학을 위해 연간 수천만 원의 사교육비를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그러니 그 긴 여정을 멈추겠다는 말이 부모에게는 충격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는 생각합니다.
‘만약 지금의 의정 갈등이 없었다면?’
그 아이는 이미 의예과 1학년으로 입학해, 선배들과 어울리며 캠퍼스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학문을 접하고, 낯선 전공 서적에 치이며 바쁘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겠지요. 1학년을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이후의 진로에 대해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고, 소아청소년과, 정형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재활의학과 등 자신에게 맞는 진료과를 하나하나 탐색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의대 공부가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졸업을 못 하기도 하고, 졸업 후 다른 분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실제로 의대를 졸업하고 웹툰 작가가 되어 의학적 경험을 녹여낸 작품(중증외상센터)을 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일단 시작해보고 진로 변경을 고민해도 늦지 않다고 자녀를 열심히 설득해봅니다.
코칭 철학을 배운 코치로서, 이 갈등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고민해봅니다.
코칭 철학의 관점에서는 진로의 해답이 언제나 당사자 안에 있습니다. 의대생은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 삶을 관찰하고,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방향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의 선택은 방황이 아니라, 자기 이해의 결과입니다. 그가 경험한 1년은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내면의 나침반을 재정비한 시간이었습니다. 코치로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진로를 찾은 것을 축하하며 응원해 줄 것입니다.
만약 우리 집 이야기라면…. 나의 자녀 이야기라면….
부모로서도 코칭 철학의 관점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코칭 철학 집어치워 버리고 싶을 것 같습니다. 이 청년의 진로 전환은 의도적인 탐색이라기보다는, 외부의 혼란과 방치된 시스템에서 비롯된 ‘틈’에서 생긴 선택이라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그것은 충분히 숙고한 전환이 아니라, 무너진 교육 현장의 ‘부작용’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성급하게 무책임한 결정을 해버리는 것은 아니냐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엄마의 심정으로 뒷 목 잡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실제로 뒷 목 잡고 쓰러진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모든 엄마가 다 같이 뒷 목 잡으며 공감했습니다. (이 와중에 본인은 성적이 아무리 좋게 나와도 의대는 갈 생각이 없다며, 내가 ‘못 가는 게’ 아니라, 적성에 안 맞아서 “안 가는 것”이라고 확실하게 미리 진로 정해주는 우리 집 입시생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혼란스러운 의정 갈등이 하루빨리 해결되어, 방황 속에 놓인 의대 신입생들이 다시 교육의 울타리 안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배움의 기회가 더는 유예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래의 의료인을 위한 교육이, 정치나 이해관계 보다 우선되어야 할 시간입니다.
<성찰 질문>
1. 나는 지금까지 ‘좋은 진로’란 무엇이라고 믿어왔는가? 그 믿음은 누구의 기준이었는가?
2. 내 자녀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로를 바꾼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응원은 무엇일까?